내 나이 26세
유일한 업적이라고는 군필 하나뿐이다.
어떠한 자격증도 없고 대학 졸업증도 없고 자존감도 없다.
이 모든것은 다 나의 업보다.
그래도 어릴적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아니, 오만했었다.
초등학생때까지는 맞벌이 하시는 부모님 뒤에서 집에 쳐박혀 게임만 했었다.
그러다 중학교 올라가면서 난생처음으로 종합학원을 다니게됐다.
동네에서 제일 크고 비싼 학원이였다.
나는 그때까지 알파벳도 제대로 모르던 놈이였다.
당연히 8개 등급의 반중에서 꼴찌반에서 시작했다.
그런데,
3개월만에 학원에서 1등반인 특목고 대비반에 들어갔다.
학교에서도 전교 2등, 3등하고 수학대회 나가서 상도 몇번 탔었다.
주위에서는 나를 천재라 했다.
나도 내가 천재인줄 알았다.
인생이 너무 쉽다 생각했었다.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중3이 되기직전에 부모님께서 투자하신 부동산이 망해버려서 집안이 어려워졌다.
자연스럽게 학원도 그만 뒀다.
나는 그동안 못했었던 컴퓨터게임을 미친듯히 하고 친구들과 놀았다.
공부는 하나도 안했다.
그래도 전교 10등은 했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진학할때가 됐다.
담임선생님이 외고나 과학고 같은데가 어떠냐 물어봤다.
부모님께 이야기해보니 집안형편 어려워도 보내준다 하셨다.
나는 그런곳에서 살아 남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가정형편이라는 핑계를 대고 일반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냥 집에서 제일 가까운 남녀공학 고등학교로 갔다.
고등학교 진학하니 학교생활이 너무 즐거웠다.
같은 학교로온 중학교 친구들이 나를 엄친아로 봐줬다.
집도 잘살고 공부도 잘하는 그런 이미지 덕분에 내 주위에는 이쁘고 잘난 친구들이 가득했다.
처음으로 여자친구도 사귀고 밴드도 하면서 놀기만했다.
그래도 반에서 10등정도 유지가 됐다.
고2때 과를 고르다가 그냥 이과가 멋지다해서 이과로 갔다.
여전히 공부는 안하고 친구들이랑 밴드하고 놀기만했다.
이때부터 성적이 뚝 떨어졌다.
처음이였다.
이런 점수, 이런 등수.
반에서 20등이였다.
뭔가 인생이 좆됐다는걸 느꼈지만 그렇다는 생각만하고 공부는 전혀 안했다.
그저 친구들이랑 놀고 여자만 찾아다니다 보니 고3이 됐다.
항상 놀던 친구들마저 공부를 시작하는걸 보고 위기감을 느꼈다.
나도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고1때 수학부터 천천히 다시 공부하려했다.
그런데 4년 가까이 머리를 안써서 굳어버린것 같다.
전혀 진도가 안나갔다.
정신차려보니 수능이 다가왔다.
도저히 수능 볼 용기가 없었다.
4등급이라는 성적으로 수시를 생각했다.
그런데 지방으로 가기는 싫었다.
그래서 집에서 제일 가깝고 이름이 그럴싸한 동서울대에 수시를 넣었다.
수능 몇주전에 수시합격 전화가 왔다.
나는 그저 기뻤다.
고등학교 졸업식까지 친구들과 미친듯히 놀았다.
그리고 졸업식때 눈물이 났다.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지나가서 였던것 같다.
대학교에 입학했다.
내가 싫어하는 타입의 양아치들로 가득했다.
여태까지 다가가지 않아도 친구가 생겼었기 때문에 먼저 다가갈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학기가 지나고보니 나는 아싸가 되어있었다.
대학교 가기가 싫었다.
2학기때는 출석도 안하고 그냥 등록금을 날렸다.
그러다 학사경고 받아서 부모님께 전화가 갔다.
부모님은 피눈물을 흘리셨다.
그때부터 휴학을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피시방 알바도 시작했다.
매일 아침 피시방에 출근해서 일 다 끝나고도 게임하다 밤이되면 집에 갔다.
간간히 연락해왔던 고등학교 친구들과도 교류가 끊겼다.
그저 잠자고 밥먹고 게임하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피시방 알바를 3년동안 했다.
사장님이 장사를 접었다.
나는 백수가 됐다.
집에서 게임만 계속했다.
그러다 23살에 처음으로 입대 신청을 했다.
한번에 붙어서 입대했다.
나는 제대로 인간이되서 전역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군생활 정말 열심히했다.
운동도 열심히 해서 고등학교때처럼 살도 많이 뺐다.
그러다 상병이 될 때 즈음 사고를 쳤다.
맞맞선임중에 21살짜리가 있었는데 자주 내 나이랑 집안형편 가지고 시비를 걸었었다.
일병때까지는 웃으며 넘겼다.
그러다 내가 상병이 될 때 즈음 폭발했다.
그 선임은 여느때처럼 나를 툭툭 치며 나이가지고 시비를 걸었다.
그런데 나는 정색하며 가정교육 못받은티 내지말고 꼬우면 쳐보라했다.
진짜 쳤다.
맞자마자 바로 당직사관한테 가서 보고했다.
선임은 영창 풀로 가고 나는 휴가만 짤렸다.
그때부터 모든 선임들은 나를 갈구기 시작했다.
특히 내 분대 분대장이 나를 갈궜다.
그전까지만해도 나랑 나이도 같고 진심으로 사이가 좋았다 생각했던 선임이 말이다.
한번 더 사고를 치고싶었지만 참았다.
그렇게 갈구던 선임들이 전역하고 나는 병장이됐다.
또 사건이 터졌다.
내가 쳤던 사고때문에 행보관은 나를 안좋게 보고있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보고할때마다 나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자주 했었다.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았다.
그러다 내 후임이 큰 잘못을 해버려서 행보관이 나를 호출했다.
평소보다 더 거친 욕과 함께 엄청난 고함소리를 계속 들었다.
그런데 나는 대답이 안나왔다.
그냥 죄송합니다. 충성만 하면 되는 상황인데 대답이 안나왔다.
행보관은 내가 개기는건줄 알고 더 갈궜다.
하지만 정말로 목구멍이 막힌것처럼 대답이 안나왔다.
그뒤로 행보관만 보면 충성이라는 소리가 안나왔다.
나는 이 상황에 위기감을 느꼈다.
그러다 일하다가 또 입이 거칠고 소리를 지르는 간부를 만났다.
역시나 이 간부한테도 충성이라는 대답이 안나왔다.
나는 다급히 이 증세에 대해 찾아봤다.
말더듬의 일종으로 말막힘 이라는 증세였다.
나를 정말 아껴주던 담당간부에게 보고했다.
그때부터 정신과 치료도 받아보고 매주 군상담원과 상담을 했다
그들은 그저 전역하면 나아질거라 했다.
나도 그렇게 믿고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군생활동안 내가 해왔던 보직이 굉장히 힘든일이란걸 알았기에 자존감이 높았다.
그래서 전역하면 이 증세도 나아지고 이 기세로 어디든 취업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전역했다.
전역하고보니 이제는 윗사람들에게 인사가 안나왔다.
안녕하세요 라는 다섯글자가 안나왔다.
그저 나는 시간이 지나면 될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1년동안 집에 쳐박혀 있었다.
말은 여전히 안나왔다.
그래서 부모님께 자초지종을 말하고 언어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6개월 정도 받았더니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나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오긴 나오게됐다.
하지만 자존감은 여전 바닥이였다.
그리고 정신차려보니 지금이다.
26살인데 아직도 백수다.
인생 유일한 업적은 군필이며 어떠한 자격증도 자존감도 없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
고용노동부에 내일배움카드 신청해서 뭐라도 하고 싶다.
그런데 뭐를 해야할지 모르겠다.
너무 막막하다.
부모님은 이런 나를 보고도 아무 눈치를 안주신다.
그저 내 인생이 이렇게된게 부모님 본인들의 탓이라고 자책하시는것 같다.
그게 아닌데 다 내 잘못인데 말이다.
막막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모르겠다.
그저 죽고싶다.
그러다가도 살고싶다.
항상 자기전에는 중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한다.
그때가 너무 그립다.
그때가 너무 후회된다.
그리고나면 다음날이 오고 또 생각없는 하루가 반복된다.
제발 이 지옥에서 탈출하고싶다.
도와줘라.
그 학교 갔더니 양아치만 있었다고 했는데 걔네 눈에는 너도 양아치처럼 보였을 수도 있음, 그리고 내일배움해서 배우러가면 더 양아치들이 있을거임대학은 그래도 학생이던 애들이 온거지만 학원은 걍 아무나 다 받아주자나난 대졸은 했는데 백수임걍 전공이 안맞고 싫어서 방황하다 이렇게 되버렸는데현실적으로 할 줄 아는게 하나도 없으면 공장, 노가다, 경리뿐